알음이 🐵 모름쌤, 안녕하세요?
알아차림을 통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말씀을 듣고 저의 마음 씀에 대해 되돌아보았어요. 그동안 저는 마음을 직접 알아차리기보다 힐링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마음의 문제를 회피하는데 노력했던 것 같아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긍정적인 생각에 대한 집착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불안한 마음은 불안한 마음으로, 좋은 마음은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반대로 불안한 마음이 생겨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름쌤 😎 하하. 참 좋습니다.
보통 우리는 마음이 불안하다거나 두려움이 생기면 ‘내가 그러한 경험을 한다’고 생각 하지요.
알음이 🐵 맞아요.
그런데 요즘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그대로 알아차리니까 마음의 문제와 그것을 알아차리는 내가 분리된다는 느낌을 받아요. 불안한 마음이 생겨도 나는 지켜보는 의식이지, 내가 불안함 자체는 아니니까요. 모름쌤, 어떤가요? 제가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 것인가요?
모름쌤 😎 하하. 현재 알음님의 상태는 이제 조금 마음공부에 재미를 붙인 상태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마음공부는 그렇게만 진행되지는 않지요.
맑게 알아차리는 의식을 경험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마음공부는 그것에 머무르지 않아요. 맑은 의식으로 인연의 법칙을 통찰해가야 합니다.
알음이 🐵 인연의 법칙이요? 인연이라면 관계를 말하는 것인가요?
모름쌤 😎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연기緣起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연기란 관계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개념인데 확실히 이해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수 있어요. 예를 들어보지요. 알음님! 알음님은 ‘여성’이지요? 처음 태어날 때부터 ‘여성’이었나요?
알음이 🐵 그야 당연하지요! 누가 봐도 당연한 것을 가지고 말씀하시니 할 말이 없네요. 제가 ‘여성’인 것이 연기법과 무슨 관계인가요?
모름쌤 😎 만약, 알음님이 태어날 때 ‘남성’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알음님이 ‘여성’이 될 수 있었을까요?
알음이 🐵 ???
‘남성’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면 ‘여성’도 없다? 반대로 말하면 ‘여성’이라는 개념이 없으면 ‘남성’도 없는 것이네요. 그러니까 모든 사물이 상대적이라는 것인가요?
모름쌤 😎 물론 ‘상대적’이라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연기법보다는 좁은 개념일 수 있어요. 상대적이라는 것은 서로 상대되는 개념을 전제로 그 둘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지만, 연기법은 그러한 상대가 가능해지는 원리 자체를 말하는 것이니까요.
남성과 여성은 상대적 개념이지요. 그러나 남성은 여성이 있어야만 남성일 수 있고, 여성은 남성이 있어야만 여성일 수 있다는 개념은 상대적인 것뿐 아니라 관계까지 동시에 말하고 있어요.
방금은 서로 상대되는 남성과 여성에 국한 시켜 예를 든 것이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들은 수많은 관계성을 통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연기법이랍니다.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먼지 하나조차도 관계망을 통해서만 존재한다는 것! 이것이 연기법이랍니다.
알음이 🐵 조금 알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러한 연기법이 알아차림과 무슨 관계라는 거죠?
모름쌤 😎 하하. 그러니까 알아차림이라고 하는 것이 그저 심리적 거리두기나 맑은 의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모든 현상의 관계성, 즉 연기법을 통찰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포함하는 모든 사물의 관계망을 명료하게 꿰뚫는 것이 바로 알아차림을 통해 나타나는 지혜이고, 이 지혜는 다름 아닌 연기의 이치를 잘 아는 것을 말합니다.
알음이 🐵 조금 알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러한 이치는 생각으로 아는 것이 아니겠지요? 예를 들면 양자물리학에서도 이 세계를 미세한 입자와 파동으로 해석하지 않나요?
모름쌤 😎 그렇습니다. 연기법의 이치란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그래서 이것을 통찰한다 또는 직관한다고 말해요. 이것은 지식의 양적인 팽창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질적인 전환을 통해서 알 수 있어요.
알음이 🐵 그럼 저처럼 늘 생각에 매여 사는 사람들은 평생 알 수 없겠네요.
잘 알아차려서 마음이 맑아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연기의 이치를 말씀하시고, 또 그것은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고 하시니 또다시 막히는 느낌이에요. 앞으로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모름쌤 😎 알음님, 연기의 이치를 생각을 통해 통찰하기 어렵다고 해서 반드시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은 생각의 차원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혹시 첫 시간에 했던 말 기억하세요?
인간의 마음은 분별의 측면과 무분별의 측면이 있다는 말이요. 연기법을 생각으로 깨치는 것은 어렵지만 반대로 무분별로 통찰하면 어렵지 않을 수 있어요. 사실, 쉽다 어렵다 조차 우리의 분별이라고 할 수 있지만요.
알음이 🐵 '연기법을 무분별로 통찰한다...' 흠, 또 새로운 숙제가 생겼네요!
무분별의 마음으로 연기법을 통찰할 수 있다니, 뭔가 새로운 차원이 열리는 것 같아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도 새로운 의식이 계발될 수 있고, 지혜까지 얻을 수 있다니, 어렵게 느껴지면서도 묘한 설렘과 희망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