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임승차
인도에서의 여행은 결국 나를 보드가야로 향하게 했다. 고타마 붓다가 깨달음을 얻었던 곳은 어떤 곳일까 하는 호기심이 제일 컸다. 무엇인가 깨달음의 흔적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그곳을 가지 않으면 인도에 온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보드가야는 성스러운 분위기가 충만한 곳이었다. 나는 불탑에서 명상을 하면서 깨달음의 향기라도 맡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보드가야는 치안이 그리 좋지 못한 곳이었다. 특히 외국인들은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늘 조심하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러나 당시 나의 모습은 외국인이라고 하기에는 좀 민망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바지는 인도 남자들이 입는 룽기를 걸치고, 위에 옷은 델리의 한 옷집에서 잘 마르는 천으로 만든 펑퍼짐한 옷을 걸쳤다. 머리는 스포츠머리와 민머리의 중간에 있었고 등에는 때가 잔뜩 묻은 배낭을 메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인도인은 종종 나를 볼 때 티베탄이냐고 물었다.
나는 보드가야에서 고타마 붓다가 정진했다고 알려진 전정각산, 시타림, 수자타 마을 등을 걸어다녔다. 특히 네란자라강을 걸어서 건너보기도 했다. 그곳을 건너는 인도인들을 따라 수심이 얕은 곳을 찾아서 걸으면 안전했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문득 버스가 타고 싶어졌다. 그래서 보드가야에서 출발하는 마을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아뿔사! 나는 돈이 없었다. 있는 돈이라고는 깊숙이 숨겨둔 달러가 전부였고 인도 루삐는 하나도 없었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 어려보이는 여자 아이가 사람들에게 버스비를 받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어떤 사람들은 돈을 내는데 또 어떤 사람들은 돈을 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게 돈을 내라고 요구할 때 나는 짐짓 인도인들이 하듯 상대방을 쳐다보면서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I have no money!”라고 말했다. 그 소녀는 눈빛이 흔들리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잠시동안 그 소녀와 나의 묘한 실갱이가 시작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그 소녀를 보며 노머니를 외쳤고, 그 소녀는 어쩔 줄 몰라하며 돈을 받기 위해 서 있었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그 소녀에게 뭐라 뭐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고, 운전기사도 큰 소리로 무엇인가를 외쳤다. 당시에 나는 누군가 나를 버스에서 끌어내리면 그냥 내릴 생각이었는데 버스는 아무 일이 없다는 듯 그냥 출발했다. 이 경험은 내 평생 돈을 안내고 버스를 타본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일 것이다.
나는 왜 돈을 내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뭐라고 하였길래 그 소녀는 더 이상 내게 차비를 요구하지 않은 것일까? 나를 동정해서였을까? 아니면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가? 지금까지도 그 이유는 모르겠고 사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당시 인도에서 나는 몇 루삐 때문에 인도인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고, 얼굴을 붉히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경험 이후 왠지 모르게 빚을 진 것 같은 기분에 그냥 알아서 속아주기도 했고, 어린 아이들이 돈을 요구할 때는 슬그머니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사바세계에서 ‘내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토록 나의 것, 내 돈, 내 물건에 집착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전생을 믿기 때문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는 마치 받을 빚을 청산하듯이 천연덕스럽게 요구하기도 했다. 불쌍한 거지는 있어도 불행한 거지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가까이서 그들의 가난을 지켜보면 볼수록 그 모두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점점 알게 되었다. 그렇다. 그들은 삶을 이어가기 위해 세상에 초연한 듯,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리라. 그들에게 주어진 어떤 가난과 차별은 그들이 마치 삶에 달관한 듯한 모습을 가지게 하였지만 그 모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종의 생존 방식일 뿐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라고 본다.
나는 인도에서 사원 안의 신성함과 고요, 사원 밖의 가난과 고통을 너무 대조적으로 목격했다. 초월을 꿈꾸는 수행자들의 얼굴에서도 알 수 없는 불안과 욕망을 종종 보기도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생존이었다. 영적인 신성함, 고통의 초월 같은 것들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인도의 풍광을 낭만적으로 묘사하거나, 인도인들이 무슨 영적인 지혜나 깨달음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만들어내는 작가나 여행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당시 내가 경험한 인도는 가난과 차별의 온상이었다. 어떤 영적인 것들은 자본에 굶주린 사람들이 새로운 자본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심미적 이미지라고 본다.
진정한 영성은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발견되어야 하는 것이리라. 지금 여기서 발견되지 못하고 특정 국가나 장소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의 관념과 환상일 뿐이다. 인도나 인도인들에게 발견되는 영적인 이미지는 그것을 해석해내는 사람들의 마음에 투사된 어떤 바람, 또는 열망이 아닐까?
인도에 갔다고 해서, 인도의 특정 명상 센터에 다녀왔다고 해서 삶이 성숙되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인도인들의 음악을 듣고, 인도들의 식이요법을 따라하고, 그들의 분위기를 따라한다고 해서 우리 삶이 영적으로 진화되지 않는다. 반대로 그들의 차별과 가난, 불평등과 부조리에 숨어 있는 어떤 삶의 맥락,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 다가서는 것이 진정한 영성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