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음이 🐵 모름쌤, 안녕하세요!
모름쌤 😎 알음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시나요?
알음이 🐵 사실 여러 가지 생각들로 좀 혼란스러워요. 그래서 오늘은 모름쌤에게 질문할 것도 많아요.
모름쌤 😎 질문이라면 언제든 환영합니다. 어떤 점이 궁금하세요?
알음이 🐵 제가 세상을 연기의 이치로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좋은 점은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에는 수많은 관계의 원인이 있겠구나!’라고 알게 된 것이고, 나쁜 점은 ‘그렇게 수많은 연기의 이치를 관찰하는 공부는 끝이 없겠구나’ 하는 좌절감이에요.
사실 마음공부 하면 긍정적인 효과가 바로 생겨나고 그래서 저의 삶도 180도 변할 줄 알았어요. 실제로 어떤 분들은 명상하면서 자신의 삶이 변했다고 긍정적인 효과를 자랑하던데, 왜 저는 공부할수록 갈 길이 멀다고만 느껴질까요?
모름쌤 😎 보통 우리가 실망할 때는 어떤 기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혹은 이러저러한 편견이나 신념도 있겠지요.
알음님은 마음공부나 명상의 긍정적 효과에 대한 기대가 크셨던 것 같요. 특히 요즘 자기계발이나 영성 관련 책들은 다양한 효과를 강조하지요. 예를 들어, 부자가 된다거나 건강해진다거나 새로운 삶의 변화를 이룬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지요. 심지어 어떤 심리적인 법칙을 사용하면 그에 해당하는 물질적인 이득을 얻는다는 이야기도 많지요.
알음이 🐵 사실 그런 효과를 기대하고 마음공부를 시작하는 것 아닌가요?
저도 그런 시대에 편승해서 명상을 시작했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잘 모르겠어요!
모름쌤 😎 하하, 일단 모른다는 것은 좋은 겁니다.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마음공부를 한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급변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드물게 급변하는 경우도 있지만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고, 우리는 다양한 조건과 관습에 길들여져 살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습관의 힘은 단번에 극복하기 힘들지요. 그래서 마음공부는 그릇된 습관의 벽을 허무는 동시에 우리가 만든 이 모든 습관이 결국 아무런 실체가 없다는 ‘지혜’로 나가야 해요.
이러한 지혜는 우리를 슬기롭게 만들지요. 그렇지만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삶을 살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마법사가 아닙니다.
알음이 🐵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모름쌤 😎 마음공부에서 지혜란 원인과 결과 또는 조건 지어진 현상의 구조를 파악하는 통찰입니다.
이것은 한편으로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 우리의 삶이란 결국 어떤 원인과 조건이 맞물리는 현장이기 때문에 그만큼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연기의 이치를 잘 통찰하면 모든 조건 지어진 것은 결국 실체가 없다는 깨달음으로 이끌지요. 이러한 각성은 그동안 집착해오던 나의 몸, 나의 견해, 물질, 건강 등에 대한 집착을 가볍게 합니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연기의 이치가 명료해지면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해방됩니다. 왜냐하면 연기된 세계는 중중무진한 관계망의 세계이기 때문에 나의 뜻대로 될 수 없지요. 이 모든 이치를 삶에 적용하고 녹여내는 과정 이것이 마음공부의 길입니다.
중요한 것은 연기된 것은 결국 허상이고 꿈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공空하지만, 공이기 때문에 연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연기의 실상은 환幻이지만 그러한 환의 세계에서 깨어나 다른 존재를 돕는 자비와 방편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자비와 방편의 힘은 그냥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발원과 서원의 힘을 통해 능동적으로 구현됩니다.
알음이 🐵 결국 참다운 지혜란 연기법을 통해 모든 조건 지어진 것은 실체가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는 것이라는 말이군요!
그러면 그러한 깨달음을 이루도록 돕는 방편과 원력이 자비라는 말인가요? 이것은 나 같은 사람은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남을 도울 수 있나요?
모름쌤 😎 마음공부에서 지혜가 계발되기 위한 필요조건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 줄 아세요?
알음이 🐵 글쎄요. 그냥 열심히 하면 될까요?
모름쌤 😎 마음공부에서 지혜가 계발되기 위해서는 다른 존재의 도움이 필요해요. 결국 마음공부는 내가 나의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을 통해 ‘나’라는 개념이 가진 허구성을 통찰하는 것이지요. ‘나’는 내가 닌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모든 존재는 결국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를 통해 존재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마음공부를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나’를 좋게 만들고, 그 ‘나’를 이루고 빛나게 하기 위해 공부한다면 결국 연기된 세계를 통찰하지 못합니다. 나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늘 나와 분리된 객체로서 타자가 존재하고, 결국 그 타자는 소외된 타자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마음공부는 그 시작점을 어디에 두는가가 중요해요. 이러한 맥락에서 <똥막대기 마음공부>에서는 처음부터 ‘나’가 아니라 관계와 자비를 염두에 두고 출발합니다.
알음이 🐵 음! 정곡을 찔린 느낌이네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동안 ‘나’라고 했던 것이 과연 실제로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어요. 모두 인연 따라서 만들어진 것인데 그래서 ‘나’ 역시 인연화합으로 잠시 존재하는 것인데…
모름쌤 😎 그렇지요. 마음공부에서 지혜란 ‘나’가 존재한다는 착각을 연기의 이치를 통해 통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연기의 이치에 대한 법문을 듣고, 그것을 나의 입장에서 사유하고, 다시 삶에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 성숙됩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과정은 나누어진 것이 니라 동시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알음님, 지금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깨어있으신가요?
알음이 🐵 생각이 왔다 갔다 했지만 잘 알아차리고 있었어요. 그랬더니 마음이 명료해지네요. 그리고 문득 그동안 왜 저의 공부가 어려웠는지 알게 된 느낌이에요!
모름쌤 😎 좋습니다. 바로 그렇게 하시면 돼요. 그러나 저의 말을 맹신할 것이 아니라 본인의 입장에서 사유하고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마음공부는 정직한 공부입니다. 이 세상에서 인연화합의 이치를 벗어나는 것은 없어요.
내 삶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된 존재입니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착각에서 해방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분명해지지요!
알음이 🐵 오늘은 좀 더 성숙해진 느낌이에요!
모름쌤 😎 우리 마음에 개념의 틀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이 없다면 많은 것들이 선명해집니다. 그리고 이때 비로소 ‘나를 위해 무엇을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다른 존재를 도울까’라는 자각이 생기지요! 우리의 상식을 흔들어 낯설게 하고 세상을 관계적으로 통찰하는 길, 이것이 마음공부입니다.
알음이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