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인도 여행 중에 히말라야 트래킹을 감행했다. 네팔 포카라에서 출발해 안나푸르나 묵티나트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약 2주 정도 걸리는 일정이었다. 나는 트래킹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부족한 상태에서 특별한 장비도 없이 트래킹을 시작했다. 히말라야에 가기 전에 좀 오래했던 등산은 한겨울의 지리산 등반이었다. 그때는 함께 선 수행을 하던 도반과 2박 3일 종주를 했는데 특별한 장비나 준비도 없이 다녀왔었다. 우리는 지리산 등반을 할 때도 밤에는 산장에서 정진하며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약간의 간식 외에 이러타할 먹거리도 없었다. 나는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고 과감히 2주 정도 트래킹을 시작했다. 왜 묵티나트를 택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누군가에게 그곳이 가볼만한 곳이라고 풍문으로 들었던 것 같다. 포카라에서 멀리 보이는 히말라야는 너무나도 성스럽게 보였고 그곳 어딘가에 있는 묵티나트는 내게 성지처럼 느껴졌다. 지도 한 장을 보면서 낮에는 걷고 밤에는 산장에서 잠을 자며 원기를 보충하면서 트래킹을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꺼운 옷, 등산화, 선크림 등의 개념도 없던 내게 히말라야는 그 자체가 신비이며, 경이로움으로만 보였다. 햇빛에 반짝이는 설산...그곳에 가면 어떤 성자를 만나거나 무엇인가 신비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 속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그런데 히밀라야는 나무도 별로 없고 작은 돌들이 많은 척박한 곳이었다. 하루 여덟 시간 정도 걷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날씨도 변덕이 심했다. 나는 추위에 지친 상태로 걷고 또 걸었다. 히말라야는 지리산과 전혀 다른 산이었다. 혼자서 걷다가 가끔씩 어떤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트래킹은 그 자체가 고역이 되었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묵티나트는 내가 꼭 가야할 어떤 목표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산을 올랐을까, 한 산장에서 나는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산장에 도착하자마자 온몸에 한기가 급습해오기 시작했고 나는 덜덜 떨면서 차를 마셨다. 그런데 마침 4~5명 되는 사람들이 산장에 들어왔다. 그들은 난로가 앞에서 덜덜 떨고 있는 내게 친절하게 인사를 하고 앉아서 즐겁게 차도 마시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게 호기심이 생겼는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물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고 선을 공부하고 있다고 하자 한 남자가 한국의 경허스님에 대해 알고 있다면서 흥미를 보였다. 그들은 네덜란드에서 온 여행객들이었다. 그러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나는 덜덜 몸을 떨면서 방으로 가면서 주인에게 이불을 최대한 많이 가져달라고 했다. 객잔 주인은 최대한 이불을 많이 가져왔다. 나는 이불을 여러 겹 덮었지만 여전히 추웠고, 열이 나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고열 속에서 정신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 같았고 이것이 죽음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나를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 낯선 곳에서 생을 마감하는구나 라는 생각들이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여행을 하면서 들던 화두가 버팀목이 되긴 했지만 몸의 고통을 줄여주거나 한기를 없애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천천히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을 때 객잔 주인과 한 네덜란드인이 따뜻한 차와 약을 가져왔다. 그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의 상태를 살펴보고 약을 먹여주었다. 그리고 나는 실신하듯 그렇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주인은 내가 거의 이틀 동안 사경을 헤맸다고 하였다. 그리고 내게 약을 갖다 준 네덜란드인이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하였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몸이 회복되었고 며칠 휴식을 취하고 다시 묵티나트로 출발했다. 제대로 된 등산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은 나는 오르락내리락 하는 산길에서 발목을 삐기도 했다.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등산객이 파스를 주어 그것을 붙이고 겨우 좋아지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묵티나트에 도착했다. 가까이 갈수록 빨리 걷기가 힘들었지만 내가 목표로 하던 그곳에 도착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무슨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았다. 힌두사원에 갔다가 잠시 구경을 하고 숙소에 가서 쉬었던 것이 전부였다. 나는 밤에 잘 때 추워서 숙소 주인에게 이불을 더 달라고 했는데, 내가 자신의 숙소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않았다고 불평을 하며 매정하게 거절했던 것만 기억난다. 나는 다음날 너무 춥고 힘들어 바로 그곳을 벗어났다. 그리고 다시 트래킹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위험천만한 일을 했던 것 같다. 그때 내가 확인했던 것은 성스러운 히말라야가 아니라 춥고, 거칠고, 황량한 산이었다. 그리고 거의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다가 살아났다. 나는 고열과 오한에 시달리면서 마음속으로 생의 작별을 고했다. 여기 무명씨가, 죽음을 핑계로 인도에 와서, 죽는다...
그렇지만 나는 다시 누군가의 친절과 도움으로 살아났다. 환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그 ‘누군가’라는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수행이란, 내 안에서 나의 마음을 보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오직 스스로만을 의식했고, 자신도 모르게 그 자아가 중요해져 있었다. 그곳에 다른 존재가, 다른 누군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서 그것을 ‘수행’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랬던 내가 비로소 다른 사람들을 관심 있게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2주 넘게 히말라야를 돌아다니던 내게 문득 마더 테레사가 떠올랐다. 마더 테레사가 운영하는 죽음의 집으로 가면 무료 봉사를 할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캘커타로 이동했다. 비행기를 탈 돈이 부족해 델리로 가서 장거리 기차를 타고 캘커타로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