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음이 🐵
모름쌤, 안녕하세요!
지난번 수업을 통해 연기법과 무아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나’라는 존재가 실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의 시야를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렇다고 시원하게 이해되거나 경험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을 인연화합의 법칙을 통해 관찰하는 것이 조금 습관이 되면서 삶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생겨났어요.
모름쌤 😎
하하! 반가운 소식입니다. 결국 마음공부는 삶에서 연기법을 통찰하고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지요! 그런데 어떤 이해가 생겨났나요?
알음이 🐵
저는 그동안 취직 준비를 하면서 계속해서 실패를 맛보았어요. 그러면서 제 자신의 무능을 탓하거나, 부모님을 탓하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연기법을 사유하다가 문득 함께 취직 준비를 하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났어요. ‘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이 합격에 목매고 있구나.’ ‘그 사람들도 자신들의 성취와 삶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구나’ 하는 자각이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마음이 조금 아프기도 해요. 우리 사회의 과도한 경쟁은 왜 생겨났는지, 더 나은 삶의 방식은 없는지 등등...
제가 지금 마음공부를 잘하고 있는 것인가요?
모름쌤 😎
네. 잘하고 계십니다. 알음님의 연기법에 대한 통찰이 비로소 다른 사람들, 다른 존재들에게 눈을 돌리도록 이끌었으니까요.
보통 마음공부 하면 내 마음 다스리는 것, 내 마음 힐링하는 것 등 모든 문제를 나에게 초점을 맞추고, 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그러한 접근 방법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어요. 바로 힐링에 집착하는 ‘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연기법을 통해 통찰력이 강화되면 다른 존재들에게 눈을 돌리게 됩니다. 좀 아이러니하지요. 내 문제도 산더미인데 남에게 신경 쓰라니...
그런데 여기 미묘한 역설의 법칙이 존재합니다. 다른 존재들에 대한 관심이 자의식을 가볍게 한다고 할까요.
알음이 🐵
모름쌤, 그러면 저는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을 통해 시험에 합격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 경쟁자인 나 같은 사람이 빠지는 것도 자비가 아닐까요?
모름쌤 😎
하하. 진정한 자비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요. 알음님처럼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극단이 아닐까요? 모든 경쟁을 포기하고 자연인이 되면 좋겠지만, 자연인 역시 어쩔 수 없이 식물이나 동물을 끊임없이 죽이면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자비를 통찰한다고 해서 갑자기 내가 처한 삶의 조건을 바꾸어 극단적으로 자신을 희생하거나 다른 사람을 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중도와 균형입니다.
자비를 통찰한다고 해서 시험을 포기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직업을 갖는 것이 나와 타인을 이롭게 하기 위한 기회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가치관을 바꾸면 우리가 처한 삶의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고, 그러한 과정은 다시 우리의 자아가 가진 무상성을 통찰하는 계기가 되니까요.
알음이 🐵
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모름쌤 이야기가 모두 이해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라는 틀에서 생각할 때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에요. 갇혀있던 사고가 확장되는 느낌이랄까...
예를 들면 저는 시험 볼 때마다 너무 긴장해서 실력이 충분히 나오지 않았는데, 결국 긴장은 다른 사람들을 이기려고 했던 마음의 결과였어요. 저는 시험장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경쟁 상대로 생각하면서 늘 전전긍긍했거든요. 그런데 연기법과 자비로 통찰하니까 긴장감이 사라지고 스스로에게도 부드러운 마음이 일어나네요.
직업을 구하는 것이 나와 다른 존재 모두를 도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니 속 깊은 곳에서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 들어요. 결국 우리는 모두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존재인데... 애뜻한 마음도 생기네요.
모름쌤 😎
좋습니다. 가끔 마음공부를 한다고 하면서도 자기의 생각이나 관념에 갇혀 사는 분들이 있지요. 그들은 마음챙김을 일종의 생산적 도구로 생각할 뿐 자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끊임없이 벼리면서 자신을 위한 도구로 마음챙김을 사용하죠.
우리가 고도의 집중력과 알아차림을 계발한다고 해도 동기가 바르지 못하면 마음의 힘을 부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알음이 🐵
음. 이런 문제는 그동안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결국 마음공부를 도구화하면 끔찍한 결과도 생겨날 수 있겠네요.
모름쌤 😎
그렇습니다. 그래서 마음공부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때로는 잔인한 결정을 할 때도 많아요. 왜냐하면 그들의 동기가 처음부터 실체적 자아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끊임없이 마음챙김, 마음공부를 들먹이지만 결국 집단이기주의나 냉혹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마음공부를 도구적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늘 자비에 근거한 지혜가 필요하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마음공부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다른 이들의 영적 성장을 질투하기도 합니다.
알음이 🐵
마음공부를 질투한다고요? 아직 저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인간은 때로 무척 어리석기도 하지요.
모름쌤 😎
다른 사람들의 영적 진보를 질투하는 것은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가진 그릇된 견해 중의 하나랍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진보가 두렵거나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왜냐하면 자신의 내면에서 버티고 있는 실체적 자아 관념이 위협당한다고 느끼기 때문이지요. 결국 이런 모든 문제들은 진실하게 자비를 통찰할 때 극복될 수 있어요. 영적 진보의 정도는 지혜가 자비로 발현되는 정도로 나타납니다.
알음이 🐵
그럼 자비는 어떤 식으로 발현되나요?
모름쌤 😎
하하. 자비는 실천으로 나타납니다.
알음이 🐵
오늘 또 새로운 과제를 주셨네요. 저는 그동안 자비와 자비의 실천을 같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것은 좁은 시야에 갇힌 것이었군요. 진정한 자비란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