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음이 🐵
모름쌤, 안녕하세요!
모름쌤 😎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알음이 🐵
네. 지난번에 ‘균형과 확장’에 대한 말씀을 듣고 저의 삶에 그것을 적용하기 시작했어요. 덕분에 삶이 풍부해진 느낌이에요.
날마다 똥막대기 유튜브 명상을 통해 알아차림과 자비심을 훈련하면서 몸과 마음이 편해졌어요. 지금은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마음을 치우침 없이 쓰는 것을 삶 속에서 연습하고 있어요. 제가 잘 하고 있는 것인가요?
모름쌤 😎
네. 정말 잘하고 계십니다. 보통 명상이나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삶이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하지요. 알음님도 그런가요?
알음이 🐵
사실 처음에는 그런 기대가 있었어요.
나름대로 열심히 명상도 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도 많이 하는데 왜 내 삶이 더 향상되지 않고 윤택해지지 않는 것이지… 라는 회의감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마음공부 자체를 즐기게 되면서 삶이 좋아지기 바라는 것도 일종의 집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좋아진다 나빠진다 등을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주제는 저의 머릿속에서 빠져나간 느낌이에요!
모름쌤 😎
정말 좋습니다!
비교하고 분별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마음공부의 지름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분별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열심히 명상하면, 열심히 마음공부 하면 가능해질까요?
알음이 🐵
저도 처음에는 마음공부를 특별한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열심히 하는 마음 자체가 이기적인 욕망의 투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 후로는 그런 마음에서도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제게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일까요?
모름쌤 😎
알음님은 스스로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분별 의식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거나 통제되지 않습니다. 만약 알음님이 마음을 열심히 닦고 챙기는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면 지금처럼 마음이 자유로워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알음님의 공부를 도왔을까요?
알음이 🐵
저도 궁금해요. 마음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생각도 없지만 마음공부가 삶 속에 자리 잡은 이유가 뭘까요?
모름쌤 😎
그것은 바로 ‘자연스럽게 마음을 분별없는 자리’로 돌이켰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회광반조’라고 하지요!
알음님, 석양을 본 적이 있지요? 석양은 빛이 구름과 먼지에 반사되어 나타나지요. 빛은 스스로를 비출 수 없지만 구름과 먼지를 통해 스스로를 나타내지요. 이처럼 마음의 빛을 돌이켜 스스로를 비추는 것을 반조라고 합니다. 그런데 반조는 주관이 객관을 비추는 이원적 구조에서는 일어나지 않아요! 반대로 주관과 객관이라는 이원적 분별이 깨져야만 하지요!
알음이 🐵
음… 어떻게 마음을 분별없는 자리로 돌이킬 수 있을까요?
모름쌤 😎
우리 인간의 분별심은 워낙 교묘해서 분별심 스스로가 스스로를 해체하는 방법을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마음을 갈 곳 없이 만드는 겁니다.
알음이 🐵
마음을 갈 곳 없이 만든다?
모름쌤 😎
매 순간 삶의 상황을 분별없는 삶으로 바꾸면 됩니다.
지금 이 순간 알음님은 마음을 어디로 향하고 계시나요?
알음이 🐵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모름쌤 😎
간단한 게임을 한번 해볼까요? 이 게임이 의미하는 것을 통해 마음을 돌이켜 비춘다는 것이 무엇인지 감을 잡으면 좋겠습니다. 이 게임의 명칭은 ‘Before 게임’입니다. ‘Before’는 ‘~이전’이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이 게임의 원칙은 바로 ‘Before’입니다. 제가 지금 알음님에게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할 겁니다. 그러면 알음님은 질문에 대답하면 돼요.
자, 이 손가락✌2개가 기본일 때, 이 손가락✋5개는 몇 개일까요?
알음이 🐵
좀 어리둥절하네요. 많은 숫자인 5에서 2를 빼면... 3인가요?
모름쌤 😎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이 손가락🤚5개가 기본일 때, 이 손가락🖐✌7개는 몇 개일까요?
알음이 🐵
그러니까... 7인가요?
모름쌤 😎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이 손가락🖐✌ 7개가 기본일 때, 이 손가락✌2개는 몇 개일까요?
알음이 🐵
그러니까 …
아! 알겠어요.
모름쌤 😎
마음을 돌이키는 방법 역시 똑같습니다.
보통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상이나 마음속에서 경험되는 생각이나 감정을 중심으로 살아가지만 관점을 전환하면 그것이 일어나는 마음 바탕을 알아차릴 수 있어요.
반조는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을 갈 곳 없이 만들어 망상의 구조를 해체시키는 작업이지요! 갈 곳 없이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각이나 느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지금 이 자리에서 그것을 돌이켜 비추는 것입니다.
이렇게 돌이켜 비출 때는 돌이킨다는 주체도 없고, 돌이킬 대상도 없어요. 생각에 빠지지 않고 온전하게 깨어있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알음이 🐵
이렇게 간단한걸, 왜 그렇게 헤매고 살았을까요?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서는 생각과 느낌에도 사로잡혀서도 안 되지만, 생각과 느낌에도 사로잡히지 않겠다는 생각에서도 벗어나야 하는군요!
저는 그동안 마음을 돌이킨다고 생각하면서 그 마음을 잡기 위해 애를 써왔어요. 그런데 마음을 돌이킨다는 것은 바로 그 돌이키거나 잡을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