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음이 🐵
모름쌤, 안녕하세요!
모름쌤 😎
알음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평안하셨나요?
알음이 🐵
네, 요즘 들어 <똥막대기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 보람이 느껴져요.
무엇보다도 일상이 가벼워지기 시작했어요. 아주 작은 변화가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내는 현상 같은 거요. 몸과 마음에 대한 접근 방식을 달리하니까 삶도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방식도 달라졌어요.
이전에는 저의 삶이 지옥에 있었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이기적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똥막대기 마음공부>를 하면서 어떤 여백 같은 것들이 삶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러한 여백을 가까이하고, 그 여백을 중심으로 삶을 보니까 세상이 달라져 보이기 시작했어요!
모름쌤 😎
그렇습니다.
우리 삶은 여백이 중심이고 다른 것들이 그 여백과 관계를 이루면서 주거니 받거니 펼쳐지고 있지요. 그런데 마음공부를 모르는 사람들은 여백을 보지 못하고 비어있음을 느끼지 못합니다. 만약 여백을 볼 수 있다면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질 수 있을 텐데요.
알음이 🐵
우리의 생각과 감정도 마음의 여백을 통해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마음의 집착이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을 나의 생각으로 붙잡고 벗어나기가 힘들었거든요. 가만히 있어도 머릿속에서 또 다른 자아들이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것 같아서 어떤 때는 내가 미친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마음공부의 핵심을 알고 나서부터 그런 마음의 재잘거림이 자연스럽게 줄기 시작했어요. 제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요?
모름쌤 😎
네. 알음님은 마음공부의 효과를 제대로 보고 있네요!
마음공부를 제대로 하게 되면 우선 생각과 생각의 여백, 감정과 감정의 여백을 알아차리게 돼요. 그 여백을 주시하고 그것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마음은 애쓰지 않아도 고요하게 되지요. 그래서 마음공부는 애쓰지 않는 공부입니다. 애를 써서 번뇌와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공성과 연기에 눈뜨게 되면 자연스럽게 집착에서 해방되는 엄청난 길이지요. 일종의 ‘마음의 혁명’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알음님, 마음의 여백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알음이 🐵
저의 경험을 통해 말씀드리자면, 마음의 여백은 알아차림 자체에요.
그런데 이 알아차림은 우리가 대상을 볼 때 경험하는 그러한 지각의 알아차림은 아닌 것 같아요.
모름쌤 😎
좋습니다.
우리 마음의 여백은 밝게 빛나는 알아차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알아차림은 대상을 아는 이원성에 기반한 알아차림은 아니에요. 알음님은 눈이 있어서 대상을 보지요? 그런데 눈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나요?
알음이 🐵
눈이 있다는 것을 알려면 …
아! 대상을 볼 수 있다는 자각 자체를 통해 눈에 대한 알아차림이 생겨나는군요.
눈이 스스로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대상을 보는 것을 통해 눈이 있다는 자각이 생겨요!
아, 우리 마음의 여백도 그런 방식으로 드러나네요!
모름쌤 😎
맞습니다. 우리 마음의 여백은 대상을 아는 주객이원의 방식이 아닌 알아차림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알음님, 마음의 여백은 어떤 때 드러날까요?
알음이 🐵
마음의 여백이 드러나는 때는 …
제 경험으로는 나와 대상을 나누지 않는 상태일 때에요.
모름쌤 😎
그렇습니다.
마음의 여백은 우리의 분별심이 사라질 때, 다른 말로 하면 나와 대상을 분별하고, 분별 된 마음의 현상을 실체시하지 않을 때 드러납니다. 이를 '무분별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무분별은 단순히 '분별하지 않는다'의 의미는 아닙니다. 아시겠지요?
알음이 🐵
하하. 잘 알고 있어요.
무분별은 분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분별에서 자유로운 마음이잖아요!
다른 말로 분별과 무분별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
모름쌤 😎
하하. 좋습니다.